-드림입니다. 오리지널캐릭터 등장을 꺼리는 분 주의바랍니다. 오리지널 캐릭터들로 인하여 원작 설정과 다른 설정으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2주간 계속되었던 장마가 슬슬 끝을 보일 즈음 오랜만에 맞이하는 반가운 햇살에 비가 그치면 머리 손질 좀 해야겠다 라고 생각해왔던 사람들은 이 좋은 날을 놓치지 않고 도심으로 나왔다. 아사히나 루이가 일하는 헤어샵 역시 그런 손님들로 가득했다.
“하아……” 헤어 드라이어를 잡고 있던 루이의 손이 돌연 멈추자 옆자리 동료 가키야마는 발 끝으로 그의 종아리를 툭툭 찼다. “아사히나. 어이, 아사히나. 정신차려.” 미용사의 돌발행동에 당황한 손님과는 달리 가키야마의 대처는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침착했다. 마치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는 듯 옅은 웃음기마저 머금고 있었다. “응? ……아, 미안.” 어떻게 대답은 하고 있지만 루이의 상태는 아직도 현실과 졸음의 경계에 있는 듯했다. “나 말고 손님한테 사과해야지.” “응. 미안해요.” “괘…괜찮습니다.” 반쯤 억지로 괜찮다 대답하는 손님의 표정에는 불안함과 의심이 서려있었지만 30분 후에는 매우 만족해하며 샵을 나섰다. 열두 번째 손님까지 웃는 얼굴로 가게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을 확인한 루이는 비틀대며 손님 전용 소파를 향해 걸어가더니 이내 그 위로 쓰러지듯 눕고 말았다. 이 광경을 처음 보는 손님들은 놀라기도 하고 꽁트 같다며 키득대기도 했다.
“저 녀석이 또!” 가키야마가 서둘러 그를 깨우려고 하자 실장인 후쿠다가 막아 섰다. “됐어. 좀 쉬라고 해. 열 시간 연속으로 그 많은 손님을 상대했으니, 아사히나군 체력에 지칠 만도 하지.” “곧 마감시간이지만 그래도 손님 전용 공간에 저 상태로 내버려 두면 보기에 안 좋잖아요.” “저런 상태인데 깨운다고 일어나겠니? 오늘 특히 수고 많았으니 끝나고 전체 회식이나 하자. 아사히나군도 그쯤에는 일어나겠지.” “당장이라도 집에 가서 쓰러지고 싶지만 이런 날에는 한잔 생각나기도 하네요. 저번처럼 1인당 3천엔 예산으로는 어림도 없을 겁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루이가 잠든 소파 주변은 예쁘장한 남자 미용사의 자는 얼굴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여자 손님들로 점점 소란스러워지고 있었다.
눈 앞의 묵직한 문을 천천히 열자 틈새를 통해 따뜻한 공기가 새어 나왔다. 그 부드럽고 포근한 바람은 문 너머 풍경에 대한 루이의 궁금증을 자극시켰고 문을 여는 그의 팔에 힘을 실어주었다. 전보다 더 크게 벌어진 문 틈으로 몸을 밀어 넣자 그곳은 꽃으로 가득한 온실이었다. 수백 마리의 나비들이 향긋함으로 만발한 꽃 위를 날고 있는 장관. 루이는 홀린 사람처럼 조금씩 그 장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피부를 감싸듯 맴도는 바람과 눈이 편해지는 풍경들, 마치 대화하듯 다양한 몸짓으로 유혹하는 나비의 보드라운 날개를 조심스레 만지며 루이는 고단했던 오늘의 피로를 씻고 기분 좋게 잠을 청했다.
[♩♪♬~] “풍경……소리” 익숙한 멜로디로 울리는 출입문의 풍경소리가 귓속을 간지럽게 파고들자 루이의 눈이 반쯤 떠졌다. “추워.” 분명 조금 전까지 온실에 있었다고 생각했던 그는 의아하다는 듯 눈 앞의 풍경을 멍하니 응시했다. 꽃 향기 대신 중화제와 염색약 냄새가 났다.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한기가 느껴지는 가죽 소파 위에 모포를 덮은 채로 누워있는 자신이 낯설게 느껴져 루이는 좀처럼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고 멍하니 누워만 있을 뿐이었다.
“혹시 오늘 영업이 다 끝난 것입니까? 아직 불이 켜져 있어 들어왔습니다.” 아직도 반쯤 꿈 속을 헤매던 루이의 잠을 완전히 깨운 것은 태어나 처음 듣는 목소리와 어투, 그리고 묘하게 어긋나있는 발음들이었다. 소리가 나는 출입문 쪽으로 시선을 옮겨보니 상,하의 모두 베이직 패션 브랜드와 저렴한 보세로 갖춰 입고 90년대에나 했을법한 포니테일 헤어를 한 여성이 마구 자라 덥수룩해진 앞머리 때문에 반만 보이는 눈으로 루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보기에 시대와 한참 뒤떨어진 촌스러운 행색이었지만 루이에게는 아까 본 꿈 속 온실에서 튀어나온 나비와 같은 순수함이 보이는 듯 했다.
“당신 눈에 힘이 없습니다. 매우 아파 보입니다. 내가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잠깐만.” 루이는 몸을 일으켜 돌아서려는 여자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녀가 하고 있던 머리끈을 풀어냈다. 여자는 돌발적인 루이의 행동에 잠시 놀라는 듯 했지만 그를 밀어내거나 저항하지는 않았다. 루이는 계속해서 어깨 근처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손가락 빗질로 몇 번 쓸더니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손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감촉은 꿈에서 만지고 놀았던 나비 날개 같았고 스칠 때마다 좋은 꽃 향기가 나 몇 번을 더 만지작거렸다.
“내 머리에 이상이 있습니까?” 여자의 질문에 루이는 고개를 저으며 그의 전용 작업석 쪽으로 안내했다. “이쪽으로 앉아볼래? 머리 셋팅 해주고 싶어.” 여자는 루이와 의자를 번갈아 보다가 이내 루이의 손에 들린 머리끈을 낚아채고는 재빨리 머리를 묶었다.
“당신은 지금 내가 외국사람이라고 바가지 씌우려고 했습니다. 난 그냥 앞에 거슬리는 머리만 자르려고 왔습니다. 앞머리는 500엔이고 세…셋팅은 3000엔이나 합니다. 나도 저 정도는 읽을 수 있습니다.” 조금 상기된 얼굴로 가격표를 가리키며 화내듯 말하는 여자의 태도에 루이는 놀라면서도 한편으로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웃음이 나왔다.
“마감 세일. 오늘의 마지막 손님, 특별히 스타일링 500엔.” 처음부터 돈 받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던 터라 이 부분은 적당하게 둘러대 흥분한 그녀를 일단 진정시키기로 했다. 둘 사이의 짧은 정적이 지나고 여자는 루이의 눈치를 보다가 쑥스러운 듯 쭈뼛쭈뼛하게 그가 안내해준 자리로 가서 앉았다.
“정말 500엔입니까? 더 달라고 해도 나 돈 가진 거 500엔밖에 없습니다.” 그 이후로도 여자는 계속 서툰 일본어로 재잘재잘 떠들었고 루이는 간간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30분을 넘긴 작업 시간과 미용사의 보드라운 손길에 여자는 긴장이 풀어진 듯 졸기 시작했다.
“잠시 쉬고 있어. 눈을 떴을 때, 멋진 날개를 단 너를 만나게 해줄게.”
주변 상점들이 하나 둘 불을 끄고 셔터를 내리는 시간 밤 11시. 마감 시간을 한참 넘긴 미용실 안은 빗과 셋팅기가 닿으며 내는 달각달각 소리와 루이가 흥얼거리는 작은 노랫소리, 그리고 졸다 곤히 잠든 여자의 색색이는 숨소리로 훈훈함을 채워가고 있었다.